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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예화 나쁜 예화(예화 사용하기)
2013-03-13 10:56:48   read : 65536












1. 일반적인 학습

2. 좋지 못한 예화

(1). 가족 이야기
(2). 성도들의 이야기
(3). 막연한 추측
(4). 목사의 지식 자랑과 경험들.
(5). 교리적인 예화.
(6). 예민한 신학적인 논쟁들.
(7). 철학적인 이야기.
(8). 다른 사람의 경험을 자기의 경험으로 말하기.
(9). 극단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예화
(10). 타종교나 다른 기독교 종파를 비판하는 이야기.

(11). 너무 긴 예화.
(12). 한 설교에 너무 많은 예화들.
(13). 공갈 협박성 예화.
(14). 기복적인 성격을 가진 예화.
(15). 자기의 치적을 과대 선전하는 예화.
(16). 다른 목사나 성도들을 비하하는 예화들.
(17). 하나님을 자기의 종처럼 하는 이야기.
(18). 잘못된 복음 해석을 유발시키는 예화.
(19). 신유 방언등 은사에 대한 지나친 강조.
(20). 자기의 영적 체험을 과장하는 간증들.
(21). 헌금을 유도하기 위한 비 복음적인 이야기.

3. 좋은 예화.

(1). 역사적 사실.
(2). 격려와 위로.
(3). 감동적인 예화.
(4). 성경 이야기.
(5). 모든 사람이 잘 아는 이야기.
(6). 신앙 위인의 이야기.
(7). 예화를 만들어 사용하기.
(8). 잘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 명언들.
(9). 과학적인 예화.
(10). 신앙인들의 시.

(11). 아름다운 동화.
(12). 좋은 그림이나 음악에 얼킨 이야기나 설명.
(13). 받은 바 은사나 은혜를 복음과 잘 연결 시킬 때.


1. 일반적인 학습

①. 예화는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②. 좋은 예화는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를 오래 동안 기억하게 할 것이며, 설교를 듣는데 지루함을 제거하고, 흥미를 유발시킨다.

③. 그러나 간혹, 예화로 인해 설교의 메시지가 흐려지는 경우도 있으며 설교와 맞지 않는 예화는 설교를 혼란스럽게 하여 진리를 훼손하는 역작용을 할 수 있다.

④. 예화는 단순해야 한다. 간단한 이야기로 진리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야지 이야기로 선포되는 형식을 취해서는 안된다.

⑤. 가급적이면 예화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⑥. 같은 예화를 두 번 다시 하지 말라. 한 번 한 예화는 패기 하지 말고 날짜와 시간을 적어
영원히 기억하도록 해서 다시 쓰지 말아야 한다.
이상하게도 성도들은 말씀을 잊지만 수 년전에 했던 예화는 잊지 않는다. 예화를 사용하되 가급적이면 성경에 있는 예화를 사용하라. 그렇게 하면 같은 이야기를 해도 시비를 하지 않는다.

같은 예화를 사용했다고 해서 설교가 잘못되었다거나 설교의 질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은 같은 예화로 인해 자기들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같은 설교를 재탕했다고 하며 (예화를 두 번 사용한 것이지 같은 설교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단정해 버린다) 설교 준비에 소홀한 목사라 하고 심지어 실력이 없는 목사라고 한다.

⑦. 단편적이고 짧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에화는 최상의 예화가 된다.

2. 좋지 못한 예화


(1). 가족 이야기
자기 가족들의 일들을 예화로 사용하지 말라.
목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일들은 자기 가족들의 일들일 것이다. 그래서 설교 가운데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단히 좋지 아니한 경우가 된다.

목사의 사 생활이나 가족들에 대한 일들은 가급적 성도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 장기적인 목회에 유익하다. 이 말을 반대로 말하면 자기 가족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들은 목회자의 목회 수명을 단축시킬 수가 있다는 말이다.

목사의 가족이 모든 면에서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 성도들의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는 공통점을 가진 평범한 가정이다. 그런데 설교 가운데 극히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를 무슨 특별한 사안이나 되는 것처럼 자주 등장시켜 회자(會炙)시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자연스럽지 못하다.

목사의 가정 이야기가 성도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성도들이 목사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졌을 때다. 그러나 성도들의 목사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면 목사 가족들의 이야기는 극도로 성도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목사가 자기 가족들을 자랑하면 부러워하면서도 시기를 하고, 목사가 자기 가족들을 비하하여 말하면 영락없이 성도들은 목사의 가족들을 비하한다.
예를 들면 목사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면 부러워하면서도 시기 질투를 하고, 공부를 못해서 진학을 하지 못하면 비웃고 下視를 한다.


특히 목사는 자기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목사가 자기 부인을 떠받치면 공처가라고 하고, 下視를 하면 폭군이라고 하며 비웃는다. 그런데 요사에 젊은 목사들이 성도들 앞에서 자기 부인을 가르쳐 사모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다.

[우리 사모가----어쩌고, 저쩌고------]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목사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목사의 일반적인 상식의 무식에 대한 스스로의 폭로가 되어 식견이 있는 성도들에게 큰 실망을 준다.

성도들 앞에서 목사는 아내를 지칭할 때 '우리 집 사람'이라 던지 '저의 내 자(內 者)라는 낮춤말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목사는 일반적인 상식에 무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렇듯 목사의 아무 생각 없는 아내와 자식 자랑 내지, 가족들에 대한 가벼운 농담이나 비하들은 목사의 가정 생활을 성도들에게 공개해 목사 가정의 신비감을 감퇴시키고 하나님의 종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2). 성도들의 이야기
교인들의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목사들이 설교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유혹 중의 하나가 들은 바 바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이다. 설교나 심방 중에 한 교회의 성도의 이야기를 한 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만일 성도들이 그런 이야기를 내 놓는 한이 있어도 동참해서는 안된다. 멀리 돌아 남의 이야기하는 듯 해도, 몇 년전에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전재해도 성도들은 그 이야기가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목사에게 경계심을 가진다. 즉 내 이야기도 목사가 하고 다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성도들은 목사에게 마음의 문을 꼭꼭 잠그고 목사의 가벼운 말과 처신에 비웃음과 경계심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종과 성도간의 관계가 소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목사의 목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①. 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수술을 받게 되어 문병을 갔습니다.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고 수술 받읍시다하며 기도를 끝내고 나올 때에 저는 한 마디 더 보탰습니다.

수술 잘 받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마는 마취에서 깨어날 때 헛소리 안하기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 때의 헛소리가 진짜입니다. 술취한 자와 술이 깬 자를 놓고 보면 술취했을 때 한 소리가 전부 진짜입니다. 술 깬 다음에 앞뒤 가리고 체면 차리고 점잖게 하는 말은 전부 거짓이며 위선입니다.

(3). 막연한 추측
확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확실한 것처럼 꾸며 말해서는 안된다.

①. 미국의 [존 호프만]이라는 사람은 프린스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아무런 낙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월슨]박사가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그의 말을 듣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는 [윌슨]박사와 상담을 하다가 하나님을 위대하시고 크신 하나님으로 믿으라고 하는 말을 통해 새로운 다짐과 변화를 가졌습니다. 그 후 그는 크고 위대한 사역 자로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주님은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크게 사용하십니다.

첨부: [존 호프만]과 [월슨]박사는 누구인가. 그들이 크고 위대한 사역 자라는 이유가 무엇인가의 설명이 없어 듣는 이들을 멍하게 만든다.

②. 1928년에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자들이 시카고의 한 호텔에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그때 이후 27년후에 조사를 해보니『챨스 수홥』이라는 사람은 세계 최대 강철 회사 사장인데 결국 빚에 쪼들려 죽었습니다.

『아터 커튼』이라는 사람은 세계 최대의 양곡 투기업자인데 파산해서 외국에 도망가서 죽었고,『리챠드 휘든이』라는 사람은 뉴욕 증권거래소 사장인데 교도소에 갇혀있다가 출소한지 얼마 안되어 집에서 죽었습니다.

『쩨세 리버모어』라는 사람은 '월'가의 거부였으나 모든 것을 다 잃고 자살을 했고,『이반 쿠룩』이라는 사람은 세계 최대 전매청장 이였는데 이도 역시 자살을 했습니다.


첨부. 이 예화도 많이 사용되는 예화이지만, 어디에서 그런 말이나 왔는지 그 출처를 대지 않으면 꾸며낸 이야기가 될 우려가 많다.

(4). 목사의 지식 자랑과 경험들.
또는 자기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설명에 설명을 해야 겨우 이해될 수 있는 어려운
이야기를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예화를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유혹이나, 자기 지식의 자랑이나, 설교 준 비를 많이 했음을 자랑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예화는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씀을 헤치는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 외의 모든 지식은 비록 그가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상식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즉 목사는 성경 말씀 이외의 모든 전문적인 지식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도들은 경제, 법, 정치, 철학, 심지어 신학
의 전문적인 지식을 표시하거나 발언하는 것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성경의 전문성 이외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성도들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자기의 전문성을 성경 말씀에 밀착시켜 사용할 줄 아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 문제나 시사 문제 도는 정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나는 군목으로 제대를 했다. 그래서 종종 군대에 있을 때의 경험을 말하곤 했는데, 그로 인해 '모든 일들 군대식으로 해결하려는 목사------'라는 오해를 많이 받아야 했다.

(5). 교리적인 예화
기독교의 교리는 성도들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진리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기독교 교리의 잘못된 해석이나 인식으로 인해 터부니 없는 이단 논쟁과 극단적인 교회 분쟁이 있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상당 기간동안 목사들은 이 교리적인 문제에 자기도 모르게 매달리
게 된다. 설교가 교리적이 되고 학교에서 배운 신학을 설교에 자주 인용하게 되는데, 배운 것을 지혜롭게 요리하거나 탈색하지 않고 원색적으로 사용해서 성도들을 혼란시키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감리교 신자들이 있는 곳에서 감리교와 장로교를 비교 설명하는 일도 있고, 타


교파 출신교인들 앞에서 타 교파를 설명하기도 한다. 성도들은 이런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러므로 교리적인 문제는 성경을 공부할 때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①. 우상은 무식한 사람들의 책이다 라는 말은 그레고리우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한 그 자신도 우상을 섬기는 일에 빠졌다.

예레미아는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는 나무 뿐이라[렘 10:8]이라고 했고, 하박국은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합 2:18]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사람들이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은 순전한 거짓임을 들어내었다. 즉 하나님에 대하여 무식한 자들이 우상을 보고 하나님을 배운다는 억지 주장이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예언자들이 그렇게 꾸준히 우상을 버리도록 백성들에게 강요했겠는가?

그러나 교황 주의자들은 확실한 원리로 우상이 책의 역할을 한다고 한 결정은 예언자들에 의해 전적으로 정죄 되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참되신 하나님과 우상을 대립시키고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 중에서)

(6). 예민한 신학적인 논쟁들.
신학적 논쟁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이단이나 케도릭, 타 종교등등, 우리와 입장을 달리하
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성도들을 심란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은 교육 시간을 활용하여
가르쳐야 할 것이다.
①.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6천년으로 봅니다. 6천년전 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재 여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계시다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이런 학설은 이단적인 요소를 많이 가진 세대론자들의 학설이다.)

(7). 철학적인 이야기.
중세는 신학을 논할 때 철학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학과 철학이 완전히 분리되어 다른 학문이 되어 있다. 그러나 두 학문 사이에 아주 긴밀한 관계는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목사들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한, 철학에 대해 깊이 접하지 못했다. 다만, 예과 시절이나 대학 과정에서 교양 과목으로 잠간 맛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철학자라는 자기 착각을 말아야 한다. 고로 철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처움부터 무리가 된
다.

①. 신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노력을 합리론적인 유신론 증명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로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증명해보려는 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유신론 증명에는 네가지 있는데 첫째는, 본체론적 유신론 증명, 둘째는 우주론적 유신론 증명, 셋째는 목적론적 유
신론 증명, 넷째는 도덕적인 증명입니다.

이중에서 본체론적 유신론증을 살펴보면,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 에 대한 개념이 마음 속에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음 속에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이 어떤 분이시며, 어디에 계신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추적해 나가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것이 본체론적 유신혼 증명인 것입니다. 안셀렘이나, 데카르트같은 유명한 신학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주론적 유신론 증명을 주장하는 존 로크나 토마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신학자들 이 우주론적 논증은 인과율의 법칙에 의한 논증입니다.

어느한 존재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구하다 보면 인류 최초의 조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 인류 최초의 조상은 바로 하나님이 만들었음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조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목적론적 유신론 증명을 보게되면,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질서가 있고 분명한 조화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우주의 대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는 우연이 아니라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그렇게 주장했고, 키에르 케고르가 그렇습니다.

마지막 도덕적인 유신론증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는 양심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양심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양심을 만드신 하나님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임마누엘 칸트는 주장했습니다.

(8). 다른 사람의 경험을 자기의 경험으로 말하기.
이것은 하나의 거짓 말이 된다. 예화 사용에 있어 어떤 경우에도 떳떳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교에 사용되는 예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예화 자체도 거룩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라 해도 거룩함을 指向하는 것 이여야 할 것이다.

(9). 극단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예화
또 예화를 사용하는 설교자가 예화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요량으로 극단적인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며,

(10). 타종교나 다른 기독교 종파를 비판하는 이야기.
우리 노회에 불교 승려로 있다가 개종하여 목사 되신 분이 있었다. 그 분이 너무 귀해서 노회의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모시고 집회를 했다. 그러나 기대한 은혜는 고사하고 교회를 시험 들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 왔다.

그것은 그 분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승려로 있을 때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때문이다. 즉 그 이야기들은 모두 불교에 대한 이야기들이 였다.

그 분은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설교를 하기도 했는데 20년이 넘게 몸담은 불교에 대한 지식이 훨씬 해박해서 불교에 대해서는 30분 이야기하고 복음은 10분 이야기하는 식이 되어 부흥회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교의 팔만 대장경을 공부하는 것인지 분별이 안되는 것이 였다.

목사들이 흔히 불교를 비판하는 예화를 하고 다른 기독교 교파를 비판하는 예화를 한다. 그것 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역겨움을 만들어 낸다.
이런 경향은 특히 60-70년대에 대 유행을 했었는 데, 그 때는 교파의 분열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금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기독교 내에서의 교파 관념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설교자가 교파 운운하는 말을 하면 구태성
을 벗어나지 못한 융통성 없는 목사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우리들의 정통성이나 이단들이나 타 교파 내지 다른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에 가르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11). 너무 긴 예화.
너무 긴 예화는 성도들을 지루하게 하고 흥미 위주가 되게 하며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한다. 가급적 5분 이상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12). 한 설교에 너무 많은 예화들.
이 점도 삼가야 할 점이다. 한 설교에 3가지 이상의 에화는 설교의 강조점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13). 공갈 협박성 예화.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부흥회에 참석을 했다. 강사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부흥사였다.

그 부흥 목사는 집회 기간 내내 성도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갔다. 그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거나, 병이 들거나, 망하거나 했다고 했다.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여기 몇가지 예를 들면
①. [내가 아는 어떤 교회에 아주 못된 집사 세끼가 있는데------- 그게 무슨 무슨 일로 목사를 몹시 괴롭혔지------. 그러다가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 가는 길에 바로 교회 앞에서 차에 치어 꽉 되지고 말았어.]

②. [내가 경상도 지방에 부흥회를 갔을 때 이야기야. 집회를 하고 있는데 옆 집에 사는 술 주 정뱅이 녀석이 술을 처 먹고 씨끄럽다고 교회에 들어 와 난동을 부린 거야. 그래서 내가 그 놈을 보고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꺼꾸러 져라' 했다고. 그러자 그 자리에서 꺼구러져 일어나지를
못하더라고------ 제 놈이 안 넘어지고 견뎌!!!!]

③. [전라도 지방에 집회를 인도할 때야. 마침 그 교회는 성전 건축을 해야 해서 헌금 작정을 하게 되었는데 '아나니아' 장로가 있더라고-------. 부잔데 헌금은 쮜 꼬리만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래 내가 일어나라고 했지. 일어 나는 거야. 그래서 '김 장로! 왜 그 모양이야. 건축비의 반만 부담해.'라고 했더니 꼼작 못하더구먼.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약속만 하고 헌금을 안해서
목사가 큰 고생을 했어. 그 장로 녀석 나중에 어떻게 된지 알아. 집 구석에 불이 나서 몽땅 망해
버렸어.]

④.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안도할 때인데------ 그 교회 장로 하나가 글쎄, 내 부흥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애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구경을 갔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 날싸 말고 비가 오고 번개 천둥이 많이 치더라구. 갑자기 비가 오니 길거리에서 우산을 한 개 사 쓴고 다닌


모양인데 갑자기 벼락이 그 장로에게 떨어졌지 뭐야. 즉살을 했지-------]

(14). 기복적인 성격을 가진 예화

부흥사들이 흔히 쓰는 예화들 가운데 전혀 성경에 맡지 않는 미신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오로지 세속적인 복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거짓되고 과장된 이야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영혼 구원의 성스러운 사역을 이루워야할 강단에서 거침없이 난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는 육신의 축복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지만, 진실한 축복의 말씀은 주님의 8복에 나오는 말씀에서나, 성령의 열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5). 자기의 치적을 과대 선전하는 예화.
내가 이 교회 성전을 건축할 때, 내가 누구 누구의 병을 치료했는데, 내가 누구를 장로 시켰더니, 내가 이 교회를 개척해서 성장 시키는 과정에서 등등------

(16). 다른 목사나 성도들을 비하하는 예화들.

(17). 하나님을 자기의 종처럼 하는 이야기.

100% 자기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신다는 거짓 말(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자기가 하자는 대로 모든 일을 하신다는 식의 교만한 말들-----.

(18). 잘못된 복음 해석을 유발시키는 예화

이런 예화는 성도들을 크게 오도해서 평생 지워지지 않고 시정되지 않는 말씀의 곡해를 만들어 낸다.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오해는 잘못된 신앙을 가져 오고, 잘못된 신앙은 그의 영혼
과 육신을 동시에 파멸시킨다. 목사는 이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는 것인가?

(19). 신유 방언등 은사에 대한 지나친 강조.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그 은사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은사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잘 사용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받고 체험한 은사 자랑 하기만 바쁘다.

그리고 그런 은사를 받아야 잘 믿는다는 식으로 성도들을 호도하고 복음을 외곡
시킨다. 은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한가지 수단이기 때문에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믿음이 크면 큰 은사를 받고 믿음이 작으면 은사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20). 자기의 영적 체험을 과장하는 간증들.

나는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그가 정상적인 사역자일 경우에 그의 사역을 위한 가장 적절한 영적 체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영적 체험이야 말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 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영적 체험이 강력하고 확실할수록 그 체험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적 체험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의 체험을 과대 평가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하라고 준 영적 체험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어 버린다.

(21). 헌금을 유도하기 위한 비 복음적인 이야기.

부흥사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어떤 종류의 부흥하들은 그들이 부흥회를 초청 받았을 때 세가지 의무감을 가진다.

그 첫째는 초청한 본 교회 목사의 위신을 세워 주고 후한 대접을 받게 하는 일이며, 둘째는 재미있게 설교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끌여 드리는 일이고(숫적인 부흥),

셋째는 헌금을 많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어떤 특수한 목적(건축등)이 있으면 그 목적을 성취시켜 주어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하지 않으면 부흥사로서의 생명이 단축된다고 생각하여, 터부니 없이 과장되거나, 자기가 체험하지 아니한 이야기들을 자기가 체험한 것처럼 거짓 말을 하거나, 헌금을 하게 하기 위한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일이 많다.

①. 어느 은혜 체험이 많다는 목사를 우리 교회 부흥회에 초청했다. 그는 정통성이 잇는 정규 신학 대학을 졸업하고 나와 군목으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였는데, 집회 도중에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말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린 아이를 낙태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지요. 아무리 태중의 아이라고 하지만 이미 생명을 가진 아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을, 그것도 자식을 죽인 것입니다.

살인 죄를 속죄 받기 위해서는 속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내일은 이번 집회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 죄요, 낙태 시킨 것도 살인 죄니 살인 죄를 속
죄하기 위한 속죄 제물을 가져 오셔서 죄 용서를 받으세요. 내가 입신했을 때 지옥을 보니 사람
을 죽이고도 용서 받지 못해 영원히 사형 집행을 당하는 영혼들을 수 없이 보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여러분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3. 좋은 예화


(1). 역사적 사실.
역사적 사실을 예화로 할 때에는 구체적인 史料에 의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예화는 만들어 내서는 안된다. 그것은 거짓 말이며 허구에 불과한 기만적인 예화이기 때문이다.

①. 영국에는 코벤트리라는 도시에 큰 교회가 있는데 2차 대전에 다 타 버리고 한쪽 벽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 벽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십시오라는 큰 글자를 그곳에 붙여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팻말을 보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용서받아야 되는지, 죄악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비록 그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찬송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우렁찬 말씀은 말없는 가운데 널리 널리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중단되는 날, 유대인 랍비였던, '벤자
이카'(유대의 유명한 교육가)는 웨스 파샨 장군을 만나서, 교육의 도시 '아브레'만은 남겨 달라고
애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벤자이카'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어도, 그 성전이 불타 버려도, 영토와 주권이 송두리째 박탈당한다 할지라도 교육이 계속되는 민족은 언젠가 역사에서 재기할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말은 이천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적중되었음을 볼 때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 할 수 있습니다.

③. 미국에 이민간 우리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유대인들이 하던 과일가게 채소 가게 세탁
소등을 점령했어도 유대인들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미국에 이민간 교포들의 65%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자녀 교육에는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자녀 교육에 성공한 요소는 선민 공동체, 가족 공동체, 예배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학교나 어떤 교육기관이나 교육제도를 통한 교육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 되고 특히 가정은 교육의 중심이었다. 그들의 교육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철저히 종교교육으로 시작된다.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으며 40일이 되면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때부터 유대인의 최고 신앙고백인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을 암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④. 세계의 영광이라고 자랑하던 로마인들은 '유대 아카프다'라는 '유대인을 잡았다'는 뜻이 새겨져 있는 승전 기념의 동전을 만들어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던 그 때, 유대의 랍비들은 망국의 비참을 씹으면서 저들의 자손에게 율법을 교육하였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교육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래이나, 유대인은 지금도 건재하고 세계사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람아메드(The learuing pepole)' 곧 배우는 백성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2). 격려와 위로
실패 속에서 믿음으로 다시 일어 나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큰 은혜가 될 것이다.

①. 우리 민족은 위대한 가능성을 가진 놀라운 민족입니다. 오늘 소망이 없는 것같이 여겨지지만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패허속에서 오늘의 한국을 이르켰습니다. 한 민족이 나라을 세워 500년
역사를 간직한 민족은 우리 민족밖에 없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놀라운 조화력에 감탄을 합니다. 한국에는 기독교, 유교, 불교, 천주교,
원시 종교들이 섞여 있는데 어떻게 분쟁이 없이 서로 함께 공동으로 섞여 사느냐고 놀라워 합니다. 즉 우리 민족은 싸움을 좋아하는 민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나라를 사랑할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삽니다.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온 세계에 놀라움과 경의감을 주는 독특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우리들에게 일어 난 모든 일들을 합심하여 선이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3). 감동적인 예화
성도들의 심금을 울려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예화가 좋다.

①. 미국의 메사추세스 노드햄토 공동묘지에 가보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무덤과 그 옆에 데이비드를 사랑했으나 일찍 죽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 아름다운 여인 제루사 에드워드의 무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위한 데이비드의 원대한 소망과 기대는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한 채 그는 죽어 보잘것없는 무덤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의 노력과 일의 결과는 지금 거의 남은 것이 없고 그의 헌신적인 선교의 기억과 수십 명의 인디언 신자들이 고작 그가 이루어 놓은 전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정 그는 한 알의 밀 알처럼 썩어져 그의 이름조차도 잊혀 가고 그의 사업도 모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의 성자라고 일컫는 요나단 에드워드가 데이비드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부
르고 그의 짧은 인생을 조그만 책으로 만들었을 때, 이 책은 미국 전역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전도의 불을 붙였습니다.

영국의 캐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이었던 헨리 마틴도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학문
의 성취와 천재적인 머리와 그에게 손짓하는 모든 기회를 포기하였습니다. 그가 인디언 탄광촌에서 전도하다가 돌아왔을 때 그의 건강은 심히 악화되었고, 그의 몰골은 거지 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흑해 북부의 거친 곳에 가서 거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전도하다가 쓰레기 더미 아래서 죽어 갔습니다.

(4). 성경 이야기
자꾸 반복해서 사용해도 좋은 예화가 있고, 그래서는 안되는 예화가 있다.
성경의 이야기는 많이 사용해도 좋다. 예를 들면 다윗의 이야기, 모세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을 예화로 할 때 두 번 사용해서는 안된다.

(5). 모든 사람이 잘 아는 이야기
예화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라. 오늘 아침에 보도된 내용이나, 어젯밤에 방송된 이야기를 예화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자기가 이미 알고 있고,
생각한 바가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동참하는 기쁨을 가지므로 예화를 통한 극대화된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①. 우리가 잘 아는 밀레의 만종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경건한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분은 하루의 농사일을 마치고 어두워 가는 황혼에, 서로 마주서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저 멀리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 옵니다. 하루의 삶을 돌이켜
볼 때에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들은 두 손을 모두고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얼마나 성스럽고, 평화스러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②. 여섯 사람이 장님이 코끼리를 보기 위하여 구경을 갔습니다. 첫째 사람은 코끼리의 배를
만져 보고 '이 코끼리는 바람벽과 같이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사람은 코끼리의 코를 만져 보고 '이 코끼리의 다리를 안아 보고는 '이 코끼리는 나무통같이 생겼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섯째 사람은 코끼리의 귀를 한참 만져 보고는 '이 코끼리는 부채 같구나.' 하고 생각했
습니다. 여섯째 사람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져 보고는 '이 코끼리는 밧줄과 같이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섯 사람이 다 돌아와서 제나름대로의 코끼리를 이해하고 만족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③. 살인마 김대두 그는 1975년 경기도 송탄에서 일가족 4명을 죽이고 두 달 동안 전남과 경
기, 그리고 서울에서 17명을 살해한 사람입니다. 이 살인마 김대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건 제가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누가 저에게 어느 대회사 사장 자리를 줄 테니 예수님을 버리고 오라 하면 저는 확실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사형의 날을 기다리며 예수
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기쁨을 기대하는 지금이 내게는 더욱 행복합니다 라고요 이러한 고백은 그의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후 나온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 같은 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로 변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심하게 변화될 수 있는 것인가? 누가 그를
그렇게 변화되게 했는가? 부모도 할 수 없는 일이고 형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많이
배우고 모든 것이 만족할 만큼 충족된다고 해서 이렇게 살인 강도가 변화될 수 있는 것인가? 지금은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돈이 이 사람을 이토록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 까?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님께서만이 이렇게 사람을 크게 변화시키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 십자가 오른편의 강도와 같은 은혜를
받았다 할 것입니다. 그는 평생에 불행하게 살고 못된 짓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으나 예수님 때문에 결국 이런 칭찬을 듣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6). 신앙 위인의 이야기
예화 중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관계가 없는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다. 즉 어떤 훌륭한 고승의 이야기 (원효. 설총등)나, 믿음으로 살지 아니한 철학자, 정치인, 학자들의 예를 들어서는 안된다.

①. 오래 전에 전치규라는 순교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페낵 선교사라는 분과 친분이 있었는데, 목사가 되기 전 하루는 페닉 선교사가 무 하나씩을 주면서 제자들에게 무를 밭에나 거꾸로 심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코웃음을 치면서 바로 묻었습니다. 그러나 전 목사만은 하얀 무가 하늘을 보게 거꾸로 심었습니다.

밭에 나가 본 페닉 선교사는 전 목사만이 순종한 것을 보고 감동하게 되었고 일평생 전 목사와 더불어 봉사하면서 유명한 원산 번역이라는 신약 성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②. 1939년 7월 7일 뉴욕 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20세
기에 최대의 영향력을 가졌다는 '본 훼퍼'라는 신학자인데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자기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가 쓴 저서들은 [성도의 교제], [행위와 존재], [바르멘 선언], [창조와 타락], [옥중 서간], [윤리학]등이 있는데 비록 자유주의적인 서적들이지만 현대 신학의 큰 영향을 준 저서들입니다.

그가 독일로 가는 이유는 그 나름대로 뜻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독일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온통 세계를 전쟁의 불바다로 만들어 가고 있었으며, 특히 유대인의 대량 학살을 저질러 역사상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잔인 무도한 만행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탑깝게도 독일의 교회
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보면서도 침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히틀러 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를 일깨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자 그는 독일로 갔던 것입니다. 그가
미국을 떠나려 할 때 많은 교수들과 동료들이 그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독일을 향해 갔습니다. 그가 미국을 떠나던 날 그는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 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했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였기 때문이다.

독일로 돌아 간 그는 나치 학정에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만 행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재주와 학문의 깊이를 아까워한 미국 교회는 그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
했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습니다.
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 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여기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1945년 4월 9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행
복한 사람이 였고, 성공한 학자였으며 목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걸어 갈 길과 목표와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뿐 느혜미아 아니라 자신과 긍지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 훼퍼는 결코 고상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추락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젊은
날에 죽는다고 해도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③. 500년전 영국의 역사가이며, 문필가인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의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그는 또한 유력한 제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헨리 8세가 케더린 왕비와 이혼을 하고 앤불레인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려 하자 정식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왕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충고를 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친구인 왕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단두대에 올려 졌는 데 최후의 진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불법적인 법에 굴복하여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죽겠다.
정의롭지 못한 법에 지배를 받고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정의에 순종하여 죽는 것이 더 영광 스럽다는 고귀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런 식별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자세 입니다.

④. 성 어거스틴의 젊었을 때는 어지간히 타락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비상하여 천재적인 문학가였고, 명성도 몹시 높았으나 마니교에 취해 가지고 몹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바로 살아보려고 결심도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보려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했습니다.

이 허황되고 방탕한 생활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로마로 갑니다. 타락된 생활 중 어느 날 그는 황혼에 동산을 거니는데 귀에 쟁쟁
하게 옆에서 누가 말하듯이 들려 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 하는 분명
한 음성이 귀에 똑똑히 들려 왔습니다. 자기 앞에는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폈는데 로마서 13장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의를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며 방탕하지 말고 술취하지 말며 음란으로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을 보고 이 말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는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
씀의 지시대로 순종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첨부: 성도들이 어거스틴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7). 예화를 만들어 사용하기.
예화는 만들어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①. 페르시아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알리 하벱드라는 농부가 큰 농장과 과수원을 경영하며 아무 부러운 것이 없이 만족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술객이 지나가시다가 만족하게 살고 있는 농부를 보고 당신은 다이아몬드만 가지면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농부는 즉시 다이아몬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다이아몬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족하게 살던 농부는 점점 가난해졌고, 삶에 불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자기의 농장도, 과수원도 다 팔아 버리고 다이아몬드를 찾는 데에만 더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다이아몬드를 찾는 데에만 더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다이아몬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찾아다니며 찾아다니다 나중에는 가난에 너무 지쳐 그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농장을 산 사람이 하루는 낙타에게 물을 먹이려고 집안에 있는 조그만 정원의 물이 흐르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낙타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는 순간 낙타의 콧등 앞에서 무지 갯빛이 반짝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가 하고 가서 자세히 보니까 유리 조각 같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 감정해 보니 바로 다이아몬드 원광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다
름 아닌 그 집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농장을 산 사람은 다이아몬드 광산 회사를 차려 큰 거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②. 어떤 날 장례식이 있어 장의차를 타고 오는데 앞에 쌀가마처럼 보이는 짐을 잔득 실은 추럭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추럭이 덜컹거리는 바람에 그 중에 한 가마니가 땅에 뚝 떨어졌는데도 추럭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달려 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장의차 운전사는 차를 급히 세
우고 그 가마니를 차에 실으려고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장의차의 운전사는 내가 먼
저 보았으니 내 것이라고 하고, 동네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 떨어진 것이니 우리 것이라고 하다가
싸움이 생겨 치고 받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얼굴이며 몸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때
집사님 한 분이 그 가마니를 열어 보고하는 말이 여보시오. 이것은 쌀가마니가 아니고 흙 가마니요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에이 에이 하면서 그 흙을 담은 가마니를 내 버린 체 싸움을 그치
고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 지도 모른 체 열심히 싸우면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③. 옛날 어느 화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그림의 소재를 찾기 위하여 아침 일찍이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제일 처음에는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목사님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목사님 대답하시길 그것은 바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지요
예배당에 가 보세요 성도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기쁨과 희망에 젖어 예배드리는 것을 보시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그 화가는 다음날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교인들의 모습의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여기에서 만족함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다음엔 갓 결혼한 듯한 아리따운 여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물어 봅니다. 보아하니 결
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댁 같은데 새댁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이
됩니까? 그 여자가 말하기를 그거야 사랑이 제일 아름답지 않겠어요? 아 그렇겠군요 이윽
고 화가는 그 아름다운 얼굴과 만족스레 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 나타난 사랑의 자태를 그렸다.

그러나 그래도 그 자신에겐 만족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한 군인이 피곤한 기색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화가는
그 군인을 또 붙잡고 물어 본다 군인 아저씨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
각하나요? 그거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제일 좋지요! 바로 그거로구나 이 화가는 다시 켄버스에 그림을 그립니다.

한 시골의 들녘에 무르익은 곡식으로 누렇게 덮여 있고 그 옆에는
한 농부가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추수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야! 이거로구나 이 화가는 좋아하면서 만족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상당히 변덕쟁이인 것 같습니다. 며칠이 못 가서 그 만족스러움이 싹 가셔 버렸습니다.

안되겠다 새로운 그림의 소재를 찾아야지 하고 집을 나섰다가 그날은 아무 재료를 얻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낯으로 피곤한 모습을 지닌 체 그냥 짐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가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그의 어린아이들이 아빠 이제 오세요? 하면서 두 팔로 아버지를 감싸안고 반갑게 맞으면서 마냥 좋아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가 따뜻한 웃음으로 여보 이제 오세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면서 반겨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온 집안 식구가
식탁에 삥 둘러앉아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그의 부인이 자! 우리 아빠의 무사히 돌아오심을 위해
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합시다.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이때 이 화가는 그토록 애써서 찾던 그 무엇이 번뜩인 것입니다.

그 아내와 자녀들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와 사랑 그리고 신앙과 평화를 보고 그렇게 애써서
찾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되뇌기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 그것은 바로 이렇게 따뜻한 가정이로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8). 잘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 명언들.
①. 성경 다음으로 가장 위대하다는 '기독교 강요'를 쓴 칼뱅은 그의 기독교 강요 상권 466페이지에서 열렬히 구하는 사람일수록 더 받을 수 있다는 주님의 가르침은 그 최대의 근거를 주


자신에게 둔 것이 아닌가? (고전 3:7)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이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바울을 썼다라고 말했습니다.

②. 칼뱅의 기독교 강요 4권에서 '하나님은 두개의 질서를 통해서 인간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하나는 교회요 하나는 국가다. 국가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빵이나 공기나 물과 같이 필요한 것이
다. 만일 이것을 근절시키는 사상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비인도적인 바버리즘(Barbarism)에 빠지게 되고, 야만적이고 포악한 사회가 되고 만다.'라고 했습니다.

(9). 과학적인 예화
이런 예화는 정확해야 한다.

①. 수력 발전소는 물의 힘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발전소를 말합니다. 그러나 전기를 만들어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는 정량의 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 두 홉의 물을 가지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인으로 말미암아 국가와 민족이 구원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효
를 거두기 위해서는 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만큼의 성도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한 두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10). 신앙인들의 시.
아름답고 멋있는 시는 이외로 듣는 성도들에게 많은 은혜를 끼친다. 성경에도 얼마나 많은 시 들(시편. 아가. 8복의 말씀등)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있는지를 상기하자.

①. 베드로의 고백 (김석균)
사랑하는 주님 내게 다가와/ 이밤이 다 가기 전에/
네가 나를 버리리라 하실 때/ 왜 그리 섭섭하던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배반하지는 않겠다고 했던/
믿음없는 나의 헛된 맹세/ 주님 마음을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부인하고 돌아서서 한없이 울었네/
내가 주를 잃고 방황했듯/ 주도 나를 잃고 슬퍼했네/ 하지만 나의 눈물보다/
주님의 눈물 더 뜨거웠네.

바젤의 詩
최초에 한 영이 있어/ 이것이 하늘과 땅, 해면, 빛나는 달/
그리고 타이탄의 별들을 먹인다./ 이 영은 모든 부분에 퍼져서/
그 덩어리를 움직이며 또 그것과 융합한다.
이 영으로 부터/
인류, 짐승, 창공을 비상하는 아름다운 새들 그리고 빛나는 태양과 대양 밑의 고기들이 나온
다. /
이 영은/ 만물에서 불의 열과 생명의 기원을/ 나오게 한다.

꿀벌은 하늘나라 마음의 한 부분/ 천상에서 어떤 힘을 빨아들인다.
그것은 /
신이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만물에 편제해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양과 소/
사람, 짐승들이 태여 날 때 실날 같은 생명을 받는다./
그리고/
민물이 그에게로 돌아가서 해소되고도 회복된다.
다시는/
죽음이 없다. 그러나 별만은 하늘 나라 높이 올라가 거기서 살리라.

내가 만일 나이팅게일이라면/ 나이팅게일처럼 노래하고/
내가 만일 종달새라면 종달새처럼 하늘을 날터인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끝없이 하나님을 찬양하여/
나의 창조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 외에/ 사람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11). 아름다운 동화.

(12). 좋은 그림이나 음악에 얼킨 이야기나 설명.

(13). 받은 바 은사나 은혜를 복음과 잘 연결 시킬 때.

(14). 좋은 문학 작품 인용하기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선한 마음을 가진 유명한 박사요 한 사
람은 악한 마음을 가진 악마의 화신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니
다. 한 사람 안에 선한 사람과 악마가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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