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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 속에 오시는 부활의 주님
2003-04-03 09:46:56   read : 35010



000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내가 자라던 때 부활절은 결코 성탄절만큼 재미나지 않았다. 성탄절에는 갓 베어온 전나무와 쿠키를 굽는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웠고 특별히 포장된 선물 꾸러미들이 쌓여 갔으며, 성탄절 당일은 사촌과 숙모들, 삼촌들이 모이고 웃음과 얘기들이 넘쳐나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잔칫날이었다.
반대로 부활절은 단조로워 보였다. 우리 가족의 일상은 내가 형제들과 함께 교회에 갈 때 옷을 차려입는 새로운 ‘부활절’ 조항을 제외하면 여느 때와 똑같았다. 맏이인 나는 언제나 넥타이를 매었는데, 몸이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웠다. 예배당의 백합들은 외부에서 구입된 것들이었다. 예배 중의 음악은 발표를 위해 뽑힌 최고의 가수들이 부르는 성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언제나 템플티룸(Temple Tea Room)에서 부활절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곳은 종업원들이 청바지가 아닌 정장 차림을 하고 테이블엔 하얀 린네르 보가 깔린 시내의 유일한 식당이었다. 부활절과 성탄절 모두가 특별했지만, 부활절은 훨씬 더 격식이 있었다. 나는 집으로 가서 넥타이를 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성경에 나타난 마지막 부활절 이야기를 읽으며 기뻐한다. 나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마음으로 성 요한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읽고 있다. 넷째이자 마지막 복음서에 있는 부활에 대한 이 이야기는 좀더 특별하다. 그러나 이 특별함은 여러분과 내가 생각하듯 격식을 차린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도 고기잡이를 떠났다(?)
우리에겐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한 형식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나눠주고, 먹는 것을 실천하는 기독교 생활방식 전통이 남아있다. 형태와 내용을 많은 부분 성경에서 따온 이 전통은 성찬예식에 명백히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전세계의 부엌과 장작불 둘레에서 배고픔에 의해서든 습관에 의해서든 남녀노소가 함께 모여 식사 때 표현되고 재현된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시고 제자들 가운데 일곱 명과 함께 잡수신다. 이 설정에는 강조점이 있으며 주목할 만하다. 이 일곱 제자들은 최근에 예루살렘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그들은 두 번씩이나 주일날 연이어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 땅인 갈릴리에 돌아와 있다.
마태에 의하면, 그 이전에 그들은 사도적 임무를 부여받았다. “가서 제자를 삼아…세례를 주고…가르쳐”(마 28:19~20). 그리고 지금, 원래의 11명 가운데 7명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들로 인해 그들의 옛 어업의 터전인 갈릴리 바다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주 최근에 예수님께 들었던 일은 하지 않으면서 보내고 있다. 왜? 왜 그들은 그렇게도 빨리 순종에서 불순종으로 바뀌어 버렸는가? 왜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안디옥, 다메섹, 그리고 아덴으로 가는 최상의 방법을 연구하면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는가? 왜 그들은 기운이 절로 나서 당장 가려고 안달하거나 열심을 내지 않는가? 왜 갈릴리에서 꾸물대고 있는가?
본문에 분명한 해답이 없는 데 대해 ‘왜’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자 한다. 나는 나와 함께 수년 동안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에서의 고기잡이를 떠나는 것과 같은 유사한 상황에서 왜 손을 떼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안다고 어느 정도 자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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