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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 현상이란?
2003-04-03 09:38:11   read : 20767

최근 교통 사고로 죽은 아내의 영혼이 딸의 육신으로 옮겨가는 사건을 중심으로 만든 일본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시기, 비슷한 소재를 다룬 국내 영화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한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가능한가? 최근 영화를 통해 접하는 ‘빙의’(憑依)를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빙의(possession)는 나의 인격에 다른 인격이 들어와서 자신의 인격은 사라지고 다른 인격으로 대치되는 듯한 현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비슷한 단어로 황홀경(trance)이 있는데, 여기서는 자신의 인격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령 어떤 영적인 존재가 자신 안에 들어오는 듯한 경험이나 교류하는 듯한 경험에서는 개인의 인격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므로 황홀경에 속한다.

다른 영적 존재에 관심 증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몸 속에 다른 존재가 들어와 ‘자리 잡는다’는 생각을 해 왔다. 구약 성경에는 복술가들의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와 말을 하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신약 성경에도 귀신의 힘을 빌어 점을 치는 사람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무당이나 점 집에서 보이는 주문도 ‘빙의 현상’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정말 다른 존재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 양 보일 뿐 실은 자신의 인격인지를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의 정서로 볼 때 개인의 몸에 다른 혼령이 들어온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유지되어 온 문화적 발상이다. 특히 죽은 혼령이 사람의 몸에 들어온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과학자들은 빙의를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분석·연구하는 과제로 삼을 뿐이지 ‘다른 인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른 인격은 증명되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매사에 그렇다. 과학의 가장 큰 맹점은 영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데 있다. 그래서 과학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무엇에든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영적 고갈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빙의’라는 주제는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영적인 것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대다수 신앙인들은 자신들이 늘 요청하고 있는 성령의 충만함과 악한 세력의 패배에는 특별하게 느끼지 않으면서도, ‘빙의’나 이와 비슷한 현상에 대해선 심하게 반발하거나 은근히 관심을 갖는다. 이런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잠시 ‘영적인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경계’를 짓고 살아간다. 땅을 소유한 사람은 경계선을 긋고, 집을 짓는 사람은 담을 세운다. 한 건물 안에서도 파티션으로 경계를 만든다. 경계를 통해서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며, 자신의 것을 확보한다.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있다. 신체적으로 가장 중요한 경계는 바로 몸이다. 태어난 아기는 자기 몸을 만지고 사물을 만지는 것으로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런 것은 신체적 경계를 의미한다. 샴 쌍둥이처럼 몸이 붙어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나 신체적 경계가 뚜렷하다.

자신의 허락 없이 절대 침범할 수 없다

하지만 정서적 경계는 그렇지 않다.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적당한 거리감을 말하는데,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 친밀하고 어떤 사람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이는 ‘편함’과 ‘불편함’으로 생기는 거리이다. 이것은 정서적 경계를 반영한다. 이것이 유지되지 않으면 경계가 침범되는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어떤 사람은 사람과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자신과 남을 정서적으로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구분의 개념을 영적인 것으로 확대해 생각하면 빙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영적 경계가 있다. 영적 경계는 실상 신체적 경계보다 더욱 견고하다. 그러므로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빙의나 황홀경의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경계를 늦추듯 영적 경계를 자의나 타의에 의해 늦추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적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그런 사람은 흔히 말하는 ‘영적 유혹’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실상 다른 사람과 노출 면에서는 비슷하다.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자각하는 것이 더 심할 뿐이다. 우리가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없듯이 영적 경계로 인해 어떤 영적 존재도 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비밀은 탄로날 수가 없다. 하지만 속임을 당할 수는 있다.
필자가 알기로, 정보통으로 알려진 일부 인사들은 남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그러나 잘 따지고 보면, 그들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은 없다. 그럴 만하다고 가정하는 능력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 가정을 점검해 보는 능력이 탁월할 뿐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는 느낌이 있으면 마치 다 안다는 듯 상대를 떠본다. 상대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아님 말고’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마음이 있는 상대가 관심을 보이면 ‘그럼 그렇지’하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경계를 깨는 것은 반드시 상호 합의하에 이뤄진다.
우리는 허락 없이 어떤 세력도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강도가 타인을 손상시키듯, 적군이 공격해 오듯 침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지는’ 경우에만 그렇다. 우리의 일반적인 각성은 영적인 침범에 당할 만큼 무방비 상태가 아니다.
약한 것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여리다는 말과 섬세하다는 말은 공통어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연관성이 있다. 우리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어떤 영적 세력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더 과민하게 반응해 자기를 보호하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의 바깥에 서 계신다. 예수님을 마음에 초대하는 것은 기분 좋은 영적 경계의 느슨함이다.


글 / 최의헌 한국정신치료연구원 원장으로 연세의료원 연구 강사이다.
일러스트 / 강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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